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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앞에 서서 리터당 가격을 바라보며 한숨 쉰 적 있나요?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3년간 국제유가는 정말 롤러코스터를 탔다.
2020년 4월에는 배럴당 마이너스 가격이 찍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2022년에는 130달러를 넘기며 숨 막히는 인플레이션을 이끌었다. 그러다 2023년에는 70달러 선까지 내려앉았고, 다시 85-95달러 구간에서 횡보 중이다.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누가 원유 가격을 움직이는 걸까? OPEC? 미국? 아니면 중국의 경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부 맞고 전부 틀리다.유가는 단일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합체다. 다행히도 몇 가지 핵심 요소만 제대로 짚으면 유가의 향방을 읽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국제유가가 요동칠 때마다 꼭 확인해야 할 세 가지 결정 요소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주유소 알바를 해본 적도 없고, 정유사 애널리스트도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원유 시장을 지켜보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풀어보겠다.공급의 무게 OPEC+의 감산과 미국의 전략비축유
원유 시장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건 공급이다. 수요가 아무리 많아도 공급이 따라주지 않으면 가격은 치솟는다.
반대로 공급이 넘치면 가격은 폭락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한 원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OPEC+의 감산 결정은 매번 시장을 뒤흔든다. 2022년 10월, OPEC+는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발표했다.당시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며 가격 안정에 나섰지만, OPEC+의 결정 하나에 시장은 출렁였다. 실제로 그해 11월부터 유가는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여기서 재미있는 건 OPEC+ 내부의 균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감산에 적극적이지만, 아랍에미리트나 이라크는 생산량을 늘리려는 의중을 숨기지 않는다.특히 이라크는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혼란으로 생산량이 자주 흔들린다. 2023년 여름, 이라크의 송유관 마비 사태는 하루 40만 배럴의 공급 차질을 빚었다.이런 변수들이 겹치면 예측은 더욱 어려워진다.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도 빼놓을 수 없다.2022년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비축유에서 무려 1억 8000만 배럴을 방출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그 결과 2022년 말 SPR 재고는 1983년 이후 최저 수준인 3억 7500만 배럴까지 떨어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7억 배럴에 육박했던 걸 생각하면, 거의 반 토막 난 셈이다.이렇게 방출된 물량이 시장에 풀리면서 유가는 일정 부분 억제됐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다.비축유를 더 방출할 여력이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다. 미국이 다시 비축유를 채우려면 유가가 낮을 때 사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수요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즉, SPR 방출이 유가 억제 수단으로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요소 | 2022년 상반기 | 2022년 하반기 | 2023년 상반기 | 2023년 하반기-2024년 |
|---|---|---|---|---|
| OPEC+ 감산 규모 | 하루 0배럴 (점진적 증산) | 하루 200만 배럴 감산 발표 | 하루 166만 배럴 추가 감산 | 하루 220만 배럴 추가 감산 |
| 미국 SPR 재고 | 약 5.6억 배럴 | 약 4.2억 배럴 | 약 3.5억 배럴 | 약 3.7억 배럴 |
| 브렌트유 평균 가격 | 108달러 | 92달러 | 81달러 | 85-95달러 |
위 표를 보면 감산 규모와 유가가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2022년 하반기 대규모 감산 발표에도 유가가 더 오르지 않은 이유는 수요 우려가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공급만 봐서는 유가의 절반만 이해한 셈이다. 실제로 원유 트레이더들은 OPEC+ 회의 일정을 캘린더에 표시해두고, 결정이 나오는 순간 포지션을 조정한다.감산 규모가 예상보다 크면 매수, 작으면 매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우디의 에너지 장관이 어떤 말을 했는지, 러시아가 실제로 감산을 이행하고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말로만 감산하고 실제로는 배럴을 시장에 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원유 시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공급 측면에서 가장 변수가 많은 게 바로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점이다.이란 핵 합의 협상이 진전되면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풀릴 수 있고, 반대로 중동에서 갈등이 격화되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지난 2019년 9월, 사우디 아람코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하루 570만 배럴의 생산이 중단됐을 때, 유가는 단 하루 만에 15% 폭등했다.이런 블랙스완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 그럼 이런 공급 변수를 어떻게 투자나 소비 계획에 반영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OPEC+의 다음 감산 결정보다는 미국의 원유 생산량과 시추공 수에 더 주목하는 게 낫다고 본다.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2023년 기준 하루 1290만 배럴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셰일 오일 업체들은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 선만 유지되면 채산성이 나오기 때문에, 유가가 너무 오르면 자연스럽게 증산에 나선다.이게 OPEC+의 감산 효과를 상쇄하는 중요한 카드다. 공급의 퍼즐을 다 맞췄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퍼즐이 기다리고 있다.바로 수요 쪽이다.수요의 함정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의 줄다리기
공급이 유가의 천장을 결정한다면, 수요는 바닥을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있다.
수요를 예측하는 게 공급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수요는 경기, 금리, 소비자 심리, 심지어 날씨까지 수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경기 침체 우려와 유가의 관계는 그야말로 복잡다기하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원유 수요가 줄고 가격이 하락한다.2023년 내내 시장을 지배했던 '경기 침체 공포'는 실제로 유가를 70달러 선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달라졌다.경기 침체 우려가 지속되는데도 유가는 다시 90달러를 넘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해답은 공급 충격과 수요 우려의 충돌에 있다.공급은 OPEC+의 감산과 러시아 제재로 줄어들고 있는데, 수요는 예상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의 고용 시장은 여전히 탄탄했고, 중국의 리오프닝은 기대보다 더딜지언정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결국 수요가 예상보다 덜 줄었고, 이는 유가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이 됐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변수는 달러 강세다.원유는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강해지면 원유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진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달러는 강세를 보였고, 이는 유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하지만 2023년 말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면서 달러도 약세로 전환됐고,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경제 지표 | 2022년 6월 | 2023년 6월 | 2023년 12월 |
|---|---|---|---|
| 미국 실업률 | 3.6% | 3.6% | 3.7% |
| 미국 CPI (전년 대비) | 9.1% | 3.0% | 3.4% |
| 연준 기준금리 | 1.50-1.75% | 5.00-5.25% | 5.25-5.50% |
| 브렌트유 가격 | 122달러 | 75달러 | 78달러 |
| WTI 가격 | 118달러 | 71달러 | 74달러 |
위 표를 보면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동안 유가도 함께 내려간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 인플레이션이 더 떨어지지 않고 3%대에서 정체되자 유가도 바닥을 다지고 반등했다.
이 구간이 바로 투자자들에게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이다. 내가 유가를 볼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미국 EIA(에너지정보청)의 주간 재고 보고서다.매주 수요일 발표되는 이 보고서에는 원유 재고, 휘발유 재고, 정제 가동률 등이 담겨 있다. 특히 휘발유 수요는 미국 소비자의 실시간 경제 활동을 반영하기 때문에, 경기 침체 여부를 가늠하는 좋은 지표가 된다.2023년 여름, 미국의 휘발유 수요는 전년 대비 2% 증가했다. 경기 침체를 말하기엔 소비가 너무 강했다.중국도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 원유 수요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2023년 리오프닝에 나서면서, 원유 수요 전망은 완전히 달라졌다.2023년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사상 최대인 하루 1280만 배럴을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다는 점은 유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여기서 재미있는 건 IEA(국제에너지기구)와 OPEC의 전망 차이다. IEA는 2024년 원유 수요 증가분을 하루 120만 배럴로 전망한 반면, OPEC은 220만 배럴로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이렇게 두 기관의 전망이 100만 배럴이나 차이 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어느 쪽이 맞든, 이 불확실성 자체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수요 측면에서 개인 투자자나 일반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는 경기 선행 지표를 주시하는 것이다. ISM 제조업 지수, 소비자 신뢰 지수, 고용 보고서 같은 지표들이 연속으로 나빠지면 원유 수요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반대로 이 지표들이 예상보다 좋으면 유가가 더 오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진짜 변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공급과 수요를 모두 고려했는데도 유가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유, 바로 다음 요소 때문이다.금융 시장과의 연결고리 달러, 금리, 그리고 투기 자금
원유 시장을 진짜 어렵게 만드는 건, 더 이상 원유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WTI(서부텍사스산 원유)와 브렌트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 선물 중 하나이며, 헤지펀드와 연기금, 개인 투기자들까지 수많은 참여자가 베팅을 걸고 있다.
달러와의 역의 관계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자주 무시되는 요소다. 원유는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상대적으로 원유 가격이 싸져 수요가 늘어난다.반대로 달러가 강세면 원유 가격은 부담스러워진다. 2023년 하반기, 달러 인덱스(DXY)가 100선까지 하락하면서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이때 원유 ETF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달러 약세 덕분에 수익률이 더 좋아졌을 것이다. 금리와의 관계는 좀 더 복잡하다.금리가 오르면 원유 보유의 기회비용이 증가한다. 원유 자체는 이자를 주지 않기 때문에, 금리가 높을수록 원유 선물을 보유하는 게 불리해진다.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2022년처럼 금리가 급등하는 국면에서도 유가가 함께 오르는 경우가 있다.그 이유는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원유 같은 실물 자산의 가치가 올라간다.| 금융 변수 | 2022년 하반기 (유가 하락기) | 2023년 하반기 (유가 반등기) |
|---|---|---|
| 달러 인덱스(DXY) | 110-114 (강세) | 100-106 (약세) |
| 미국 10년물 금리 | 3.5-4.2% | 3.8-4.5% |
| WTI 선물 투기적 순매수 포지션 | 15만-20만 계약 | 25만-30만 계약 |
| 브렌트유 가격 변동성 | 높음 (일일 3-5% 변동) | 중간 (일일 1-3% 변동) |
표에서 눈에 띄는 건 투기적 순매수 포지션의 변화다. 2023년 하반기로 갈수록 헤지펀드들의 WTI 매수 포지션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유가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 포지션이 한 번에 청산되면 유가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커미트먼트 오브 트레이더스(COT) 보고서는 이런 투기 자금의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 자료다. 매주 금요일 발표되는 이 보고서를 보면, 누가 얼마나 원유 선물을 매수하고 매도하는지 알 수 있다.개인 투자자들이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활용하긴 어렵지만, 투기적 포지션이 극단으로 쏠렸을 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3월 WTI가 130달러까지 치솟았을 당시 투기적 매수 포지션은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이후 두 달 만에 유가는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투기 자금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면 시장은 반전할 준비를 한다는 게 내 경험상 진리다.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건 ETF와 지수 추종 자금의 영향력이다. USO(United States Oil Fund) 같은 원유 ETF는 개인 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이 ETF가 실제로 원유 선물을 매수하면서 시장에 추가적인 수요를 창출한다.2020년 4월, USO가 원유 선물 만기 근월물을 롤오버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일시적으로 왜곡된 사례는 아직도 회자된다. 이 모든 금융 변수를 종합하면, 원유 시장은 더 이상 공급과 수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달러와 금리의 움직임, 투기 자금의 흐름, ETF의 영향까지 고려해야 비로소 전체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원유 관련 투자를 고려한다면, WTI 현물 가격만 보지 말고 달러 인덱스와 10년물 금리, COT 보고서를 함께 확인하길 권한다.이 세 가지를 동시에 보면 최소한 큰 방향성은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유가가 단기 급등했는데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면, 이는 투기적 베팅에 의한 상승일 가능성이 높다.이런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낫다.원유 시장은 공급, 수요, 금융이라는 세 개의 거대한 파도가 동시에 밀려오는 곳이다. 한 가지 요소만 보고 판단했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반대로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면, 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주유소 앞에서 한숨 쉬는 대신, 다음번 국제유가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이 세 가지를 떠올려보길 바란다.그럼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시장이 보일 테니까.